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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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바닥 초신성, 2025




작업실 바로 앞에는 하천이 흘렀다. 막 도착한 때가 여름 장마 즈음이라 하천은 늘 시원하게 흘러갔다. 작업실 건물에서 나오자마자 들이치는 물소리는 나를 자석처럼 하천 길로 이끌곤 했다. 매일 근처 수영장을 오갈 때에도 일부러 하천 옆길로 돌아서 걸었다. 근처 주민들에게도 인기가 많아 교량 아래 그늘에는 늘 가족들이 바글했다. 나는 혼자서 찬물에 발을 담그고 바위 위에 앉아 드로잉하곤 했다.

작업실은 하천의 북쪽에 있었다. 하천 바로 옆, 북쪽은 작업실과 마을회관, 어르신들이 거주하는 예스러운 주택, 작은 밭, 누구도 돌보지 않아 풀이 무성한 공터가 있는 시골 풍경이었다. 반대로 하천 바로 옆, 남쪽은 이제 막 공사 중인 높은 아파트가 가득 들어서고 있었다. 높은 아파트 벽 뒤에는 지역에서 이름 붙인 카페 거리가 있을 만큼 번화한 곳이었다. 공사의 과정인지 시간이 흘러갈수록 아파트의 집 안 수많은 조명을 잠시도 꺼두지 않았다. 24시간 켜진 수십 개의 불빛은 별빛을 방해할 수밖에.

작업실 옆 하천을 거스르는 방향에는 저 멀리 산이 버티고 있었다. 비가 오면 늘 구름이 걸린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하천의 북쪽에 높은 건물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눈에 아무것도 걸리지 않고 큰 산을 시야에 전부 담을 수 있는 경험은 레지던시와 집을 오갈 때 고속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도중 산을 빠르게 스쳐 지나간 순간들과 대비되었다. 하천 옆에서는 나도 움직이지 않았기에 산도 움직이지 않았다. 산은 낮에는 구름 모자를 쓰다가 밤이면 머리 꼭대기에 빨간 항공 장애등을 깜빡거렸다. 그러고 보니 비행기에선 별이 더 잘 보이겠지?

아파트 조명이 꺼지지 않는 밤에 하천을 거닐면 왼편은 불빛이 솟아오르고 오른편은 암흑이었다. 하릴없이 나온 밤 산책에서 어렴풋이 별들을 보았던 날부터, 암흑이 더 완벽한 때를 기다렸다. 예전에 여기저기서 듣던 오지 여행기에서 사람들은 광활한 하늘의 별들이 주는 감동을 칭송했다. 어렸을 적 방문했던 천문대에서 보았던 별도 내게 추억으로 남아있었다. 성인이 되고 하늘의 별 개수를 다섯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서울에서 지내면서 점점 그 추억의 그리움이 커져만 갔다. 다시 맑은 하늘의 별을 본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드디어 그날이 왔다. 어느 순간 공사가 다 되었는지 아파트 조명은 더 이상 켜지지 않았다. 미리 현장 조사를 해 하천 산책길의 가로등까지 꺼지는 시간을 확인해 두었다. 오늘은 모든 조명이 꺼지는 밤이 찾아온다. 새벽 4시, 휴대폰만 챙겨 밖으로 나간다. 너무 어두워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휴대폰 플래시로 발끝을 비추며 일말의 시야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로지 밤하늘만 눈에 담길 수 있는 공터로 가볍게 걸어간다. 콘크리트 포장길을 지나 흙과 풀이 뒤섞인 오늘의 무대에 도착해 기대를 잔뜩 품고 하늘을 올려다보자, 온몸이 굳는다.

길을 걸어오며 언뜻 보았던 밤하늘 풍경은 아파트, 교량, 나무와 같은 그림자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배경이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하늘은, 배경이 아니라 우주다. 그저 시야에서 다른 것을 덜었을 뿐인데 나는 우주 한복판에 떨어졌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바라본다…. 눈도 깜빡일 수 없고 숨 쉬는 것도 잊은 조용한 육체 안, 머릿속은 폭발 직전이다. 압도를 넘어선 이 초월적 공포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작은 사진과 전기 모니터로 바라보던 별들이 아닌 눈앞의 진짜 별. 이제껏 신성(神聖)시했던 나의 별, 나의 우주는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고, 감각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너무 거대한 모습으로 내 몸을 짓누른다. 혼란스럽다.

심해 공포증, 어둠 공포증과 비슷하게 인터넷에서 흔히 지어 말하는 ‘우주 공포증’이라는 것일까? 단지 사진으로 볼 때는 증상이 미미했으나 실제로 마주하니 공포가 치솟는 걸까? 나는 별을 좋아하면서 동시에 공포를 느끼나? 아니, 그보다는. 환상을 품었던 상대가 나를 냉대하는 느낌. 나를 한없이 작아지게 만드는 우주의 무관심. 내가 무엇을 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라는 허탈함. 세상에 홀로 남은 기분.

문득 굳어버린 몸에서 단 하나만 느껴진다. 발바닥. 그리고 그와 닿는 땅. 우주에 떠 있는 몸이 동시에 땅에 박혀있다. 내가 저 멀리 날아가 버리지 않도록 바닥이 발을 붙잡고 있다. 발바닥에서 일어난 작은 신성(新星)* 폭발이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잡는다. 넌 여기 두 발 딛고 잘 있다고. 그리고 그 폭발은 발과 땅을 구분할 수 없는 감각을 선사한다. 실제론 그저 자기 자리를 지키던 별이 잠깐 수만 배 밝아지는 현상일 뿐이지만 갑자기 등장한 하늘의 밝은 별을 보고 새로운 별이 태어났다고 여겨 붙여진 이름 ‘신성’처럼, 너무나 새로운 감각이었으나 알고 보니 원래부터 존재하던 이 기묘한 얽힘을 곱씹게 한다.

발을 디딜 때마다 땅은 노크해온다. 땅이 닿을 때마다 발은 뿌리 내린다. 잠시 떨어졌다 다시 붙을 때, 실은 초신성 폭발이 일어난다. 훗날 새로운 별을 탄생시킬 어느 별의 죽음인 초신성이 내 발바닥에 있었다니, 나의 우주는 하늘이 아니라 땅에 있었구나.



*nova, 희미하던 별이 폭발 따위에 의하여 갑자기 밝아졌다가 다시 서서히 희미하여지는 별. 보다 강력한 폭발 현상은 초신성(supernova).


©Miryu Kim